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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너지건축의 가치 – 규제를 넘어 산업 활성화와 혁신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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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5.02.12 18:23:03
  • 조회수 186

박덕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제로에너지빌딩센터장

헌법재판소는 ’24년 8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상 현행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 온실가스 감축 추진 속도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지만, 국제사회에 약속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적극적 정책 추진 노력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 온실가스 목표와 연계한 핵심 감축 정책 수단인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기재부와 환경부는 ‘24년 12월말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2035년)”을 발표했다. 대표적 규제 제도임에도 각 참여업체가 비용 효과성을 판단, 감축 수단을 선택하게 하여 시장 가격 기능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 성과가 기업의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계획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합리성, 시장원리 기반 운영, 선진화된 탄소시장과 혁신기술 상용화로 파생되는 신산업 육성 등을 목표로 온실가스 감축 뿐 아니라 산업 경쟁력 강화를 함께 달성하기 위한 기대를 담고 있다.

건물부문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정책인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를 선언한 ’09년 11월 “녹색건축물 활성화 방안”은 당시 국토해양부가 주관하여 발표한 내용이니만큼 건설 단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존 건축물 에너지효율 개선을 위한 건축물 매매·임대시 에너지소비증명서 발급 의무화 계획은 부동산 중개업계의 반발로 시행 후 폐지되었고, 한시적 재정지원사업으로 그린리모델링 이자지원사업을 만들었으나, 기존 건축물과 운영 단계 온실가스 감축 사업은 아직까지는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제1차 및 제2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의 정책과제에 대한 국민 및 전문가 평가결과에서 신축 건축물 에너지성능 강화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과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및 ZEB 인증제도”는 우리나라 녹색건축물 활성화를 견인해오고 있다.

어느 아시아 국가보다 먼저 발표했던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건축물의 단열기준은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서 ’08년 이후 네 차례의 단계적인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 강화를 통해 ’17년에 현재 수준으로 완성되었다.

2010년대 우리나라의 건축물 에너지절약설계기준과 에너지절약계획서 제도를 벤치마킹하고자 일본 경제산업성(METI)과 국토교통성(MLIT), 싱크탱크인 노무라종합연구소 등에서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었고, 일본은 해당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도입하였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는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도를 신설, 공공 부문에 인증 의무화를 시행하였고, 그 사이 일본은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에 대한 로드맵과 기준을 구체화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제로에너지건축물 및 녹색건축인증 제도는 한국의 설계기준 또는 인증제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의 그린마크인증만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당초 예고했던 제로에너지건축물 민간 의무화 시점이 된 ‘25년 현재,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제로에너지건축에 대해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제로에너지건축물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에너지를 쓰지 않는 건축물, 다른 의미로 Net-Zero Energy의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현재 가용 기술을 감안한 경제성을 고려할 때 모든 신축 건축물을 Net-Zero Energy로 구현케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므로 정부는 ‘20년부터 공공부문에 제로에너지건축물 5등급 의무화를 목표로 추진해왔다.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부문과 달리 경제성을 감안해야 하는 민간 건축물에 제로에너지건축물 의무화를 본격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준”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의무화는 건설업계와 시장에 부담이 되니 건축 인허가 기준인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과 「에너지절약형 친환경주택 건설기준」 개정을 통해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5등급 수준으로 갈음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제로에너지건축물 5등급 인증의 에너지자립률 20~40% 대비 「에너지절약형 친환경주택 건설기준」은 13~17% 수준,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은 13~14%로 표현하고 있는바, 제로에너지건축물 “수준”이라는 용어에 대해 설계기준만 만족하면 제로에너지건축물이 되는 것인지 일부 건설업계는 반문하고 있다.
인증은 설계 및 시공 적용의 적합성을 제3자가 검증하여 공신력을 확보하는 절차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효율에 대한 전문적 설계와 시공의 부실로 인한 건축주의 차후 피해를 사전 예방할 수 있는 절차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설계기준이 그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에너지효율 아이템에 대해 준공시 인허가권자에 제출하는 이행검토서 양식만으로 전문적이고 공신력있는 확인이 가능한 것인지 우선 검토되어야 한다.
설계기준(Building Code)과 인증(Building Certification)의 프로세스와 자원, 시스템의 공신력이 서로 다름에도 제로에너지건축에 대해 동등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엄밀한 검증(Validation, Verification)을 거친 공식적 인정(Accreditation) 없이는 불가능하다.
완화된 민간 설계기준 적용을 통해 건설업계의 부담을 줄여주려는 정부의 고민과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설계기준의 규제 강화와 함께 국가가 지향하는 제로에너지건축물의 성능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은 BELS(Building-housing Energy-efficiency Labeling System) 제도를 기반으로 하며, 다음 표와 같이 ZEB, Nearly ZEB, ZEB Ready 및 ZEB Oriented로 구분된다. 이 중 ZEB Oriented는 패시브 기술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고 공조 반송 동력 증대 등으로 제로에너지건축물 구현이 쉽지 않았던 1만제곱미터 이상 대형건물을 대상으로 추가된 등급이다. 1차 에너지절감 기준이 ZEB Ready에 비해 건축물 용도에 따라 10~20% 완화되지만, “추가 에너지 절약 실현을 위한 조치”로서 현 시점에서 평가 프로그램에서 평가되지 않는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필수로 한다.
일본은 제로에너지건축물 구현을 위한 잠재력이 있는 기술이지만 현재 평가되지 않은 기술에 대해 ZEB Oriented 인증 후, 평가되지 않은 기술의 운영 결과를 검토하여 평가 방법의 업데이트를 추진한다. 이를 통해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을 유도하며, 평가프로그램에 반영되지 않은 기술이라 해서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일본의 제로에너지건축물 평가방법이 우리보다 우수하단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제로에너지건축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시간이 걸릴지라도 엔지니어와 연구자들의 열린 협업을 통해 기술별 에너지성능평가 방법을 고도화하고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을 발전시켜 온 체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재도 평가 프로그램 웹페이지에서 API를 제공하고 다른 소프트웨어와 연동할 수 있는 일본의 평가 프로그램은 다양한 연구기관과 협회, 대학, 기업이 협력하여 개발하고 공개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일례로, 마에다 건설공업주식회사는 프로그램 연계를 통해 외피나 설비 등 건축물 정보 입력에 투입되는 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 자동화 설계 지원 시스템을 개발하여 생산성 향상과 설계 품질 향상 효과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제로에너지건축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설계사, 건설사, 컨설팅사 대상 ZEB 플래너 등록시스템을 운영하여 건축주가 컨설팅 서비스를 받도록 하고, 경제산업성과 환경성이 실시하는 ZEB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ZEB 플래너가 참여하여야 한다.
이처럼 국내 건축물 기술에 맞는 유연하게 저작(著作)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이 있다면 다양한 관련 산업의 발전과 제로에너지건축 규제를 스마트하게 이끌 수 있다.
에너지절약계획서의 에너지성능지표(EPI)가 에너지절감효과를 정량적으로 표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폄하되던 시기도 있었으나, 아이템별 Prescriptive standards는 선진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평가 방법이며 현재의 EPI는 국내 건축물의 특성에 맞도록 국내 기술 기준을 정립해 왔다.
Building Code로서의 설계기준과 Building Certification으로서의 인증제도가 각각의 역할과 그에 맞는 목표와 수단으로서 특화되는 것은 어느 선진국이나 마찬가지이다.
탄소중립 추진은 현재의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혁신 기술의 개발과 발전이 끊임 없이 지속되어야만 하며, 이는 국책 R&D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민간 기업의 기술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기술 개발을 유도하고 개발된 기술을 수용하는 체계가 바뀌어야만 한다. 국내 및 해외 표준이 존재하는 기술만 수용하는 평가프로그램으로는 탄소중립을 위한 제로에너지건축 기술 개발 속도를 쫓아갈 수 없다. 제로에너지건축이 최소한의 의무 준수를 위한 규제로만 활용되기에는 관련 산업의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포텐셜이 너무나 크다.
중국이 개발한 오픈소스 AI 모델 딥시크가 화제가 되면서 신산업 발전을 위한 개방성과 수용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네거티브 규제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친환경건축, 건물에너지 시장이 태동한 20여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다. 여러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하고 실무에서 전문성을 쌓은 국내 전문가 POOL도 넓고 깊어졌으며, 다양하고 건전한 의견이 적극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 건설사와 건축사무소, 친환경컨설팅사 등이 각자의 전문성과 특화된 기술을 펼치고 제로에너지건축의 가치 실현을 위해 자부심을 갖고 노력할 수 있는 변화의 시작점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